반출생주의적 기독교 실험

투고를 위한 창세기 초반 exegesis

연결러 2026. 4. 3. 06:10

 

최근 Kirk Lougheed의 책 Christian Anti-Natalism이 출간되는 등 [링크] 이제는 반출생주의에 대한 기독교 신학적 논거는 충분히 쌓인 것같다.

 

그러나 여전히 기독교적 반출생주의 논증의 가장 큰 걸림돌(=사탄[각주:1])이 되는 것은 창세기 초반부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구절일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창세기 초반 반출생주의적 exegesis를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1. 큰 틀: "온전히 무르익지 않은 유일신론 하에서 신 자체와 무관한 인간적 희망이 모두 신에게 투사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약에서는 야훼가 이집트 왕조의 멸망과 타 민족에 대한 저주를 내뱉는 대목이 나오고, '적'으로 레이블링된 대상에 대한 적대적 자세가 뚜렷하다. 이것들은 유일신 자체의 특성이 아니라 이스라엘/유대 민족이 자신의 희망을 신의 목소리로 투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빌론 유수(포로기)를 지나 제2성전기에 들어오면서 점차 보편적 유일신 관념이 자리잡으면서 오히려 '유대 민족의 전통이나 전례에 혐오를 표현하는' 야훼가 묘사된다. 제2이사야(이사야 40–55) 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즉,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하는 창세기의 야훼는, 유대민족이 타민족을 학살하도록 인허하는 야훼와 묶어서 해석해야 한다. 신의 속성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 유대 민족이 가졌던 배타주의적/민족적 욕망이 유일신의 목소리로 투사된 것이다. 

 

 

2. 창세기는 시간순서를 가진다. 그리고 나중에 일어난 사건은 이전에 일어난 사건을 번복한다.

창세기는 전후관계가 드러나는 시간적 서술을 가진다. 창조 사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사건보다 시간적으로 우선되고, 노아의 방주 사건은 이집트 가뭄과 요셉의 꿈 사건보다 선행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나중에 일어난 사건이 이전에 성립했던 명제를 번복한다는 것이다. 특히 에덴동산 내에서의 명제(규칙)는 에덴동산 밖에서 번복된다.

 

A. (한 가지 금기를 제외한) 에덴동산에서의 일체의 허용은 뒤에 가서 번복되어 인간에게는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이 정해진다.

B. 마찬가지로 창세기 1장에 "피조물이 보기에 좋았다"라는 명제는 6장에서 "인간을 지으신 것을 후회한다"로 번복된다.

 

종교인들은 A는 흔히 받아들이지만 B는 흔히 무시한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역시 에덴동산 내에서 성립하던 규칙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3. 동산의 안과 밖

창세기 초기 구절을 에덴동산 안에서의 사정과 에덴동산 밖에서의 사정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은 재미있는 인사이트를 준다 (창세기 3장이 경계선 역할을 한다). 

 

첫째,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 안에서는 출생하지 않았다. 모든 출생 사건은 에덴동산 밖에서 이루어진다. 에덴동산 안에서는 섹스를 해도 '다른 생명의 80년치 고통'(=출생)으로 연결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담과 하와가 섹스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3장 15절에 보면 야훼가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쫓아내기 전에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즉 아예 자식을 낳는다는 행위 자체가 에덴동산 안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이루어져야 할 미래이다.

 

둘째, 고통은 에덴동산 밖에서의 사정이다. 인류애적 반출생주의(philanthropic antinatalism)[각주:2]에서는 고통의 방지를 반출생주의의 최대 효용으로 본다. 반출생주의가 인류에게 가져올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더 이상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만든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창세기를 읽으면, 흥미롭게도 고통의 존재는 에덴동산 밖에서의 이야기다. 다시 창세기 3장 15절-19절에 보면 이 구절이 나온다.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남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서,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이제,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땅은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다. 너는 들에서 자라는 푸성귀를 먹을 것이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때까지,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을 낳고 고통을 당하며 노력하지 않으면 죽게 되는 고통은 에덴의 밖 특성이다. 

 

그리고 다시 반복하지만, 신은 인간을 지은 것을 후회했으나 용납하고 있다. 심지어 예수를 보내면서까지 "나는 자비로운 신이니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다만, 출생을 멈추어 스스로 마무리를 지어라" 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1. 사탄은 말 그대로 걸림돌이라는 뜻이다 [본문으로]
  2. 인간이 겪어야 할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 윤리적 당위라면, 출생을 통해 경험해야 하는 80년치 고통 그리고 죽음이라는 고통을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하다는 관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