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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출생주의의 coat of arms를 생성해보았다

발이 묶인 황새는 더 이상 아기를 전달할 수 없음을 상징하고 뱀은 지혜를 의미한다. 불꺼진 횃대에 계속되는 연기는 출생이 더 이상 없어더라도 지금 현상황의 여파(연기)로 안전하게 종말할 수 있음을 상징하고, 그 시간을 언젠가는 끝날 모래시계로 상징화했다. Non Nasci Optimum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적이다"라는 라틴어 경구

반출생주의 2025.04.29

제약의 중첩으로서의 불가능과 논리적 불가능 그리고 제약 구성의 주체로서의 신

요조의 음악 '슈팅스타'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중랑천에서 배를 타고 홍콩으로 떠나는 주성치 중랑천을 타고 한강을 지나 서해를 건너 홍콩까지 배를 타고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건 불가능하잖아'라고 생각하는 순간 "왜 불가능한거지" 하며 뒤통수를 크게 맞은 것 같았다. 이때 사건에 대한 판단인 "불가능"은 양극적(polar) 판단이 아니라 여러 제약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것이다. 출입국심사나 주성치의 체력문제 등 실용적 제약으로부터, 좁은 중랑천부터 황해바다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장거리 항해가 가능한 배를 구성하는 것에 관한 공학적 물리적 제약 등이다. 제약의 중첩으로 인한 불가능은 말하자면 각 요소를 변인으로 대입하여 산술적으로 나오는 값과 같다. 이와 대조되는 '양극적' 불가능은 논리의 영역이다...

기독교곱씹기 2024.07.26

완벽이라는 우상

사람들이 신에게 쉽게 부여하는 자질 중 하나는 '완벽'이다. 소위 '기독교'를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도 이러한 경향에 따라 '완벽' 이라는 우상을 신 대신 숭배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은 완벽한 신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신"(The disabled God) 이다. "If Christ resurrected still participated fully in the experience of human life, including mysteriously, the experience of impairment we must be scandalized by our theological tendencies to perpetuate the myth of bodily perfection in our defense of h..

기독교곱씹기 2024.04.09

물속에 쳐박아도 익사 전까진 행복할 거란 망상

누군가를 태어나게 하는 것은 마치 아기를 물속에 쳐박는 것과 같다. 아기를 물속에 쳐박으면 시간이 지난 후 익사한다. 그 시간은 정해져있지 않지만 일정한 분포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익사하는 것은 확정적이다. 태어나게 하는 것도 시간이 지난 후 죽음을 초래한다. 그 시간은 정해져있지 않지만 일정한 분포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죽는 것은 확정적이다. 아기를 물속에 쳐박으면 아기 입장에서 좋은 점들이 있다. 우선 수상생물들과 산호의 다채로운 모습을 눈으로 직관할 수 있고, 고통이 지속되다 보면 상쇄하기 위해 도파민이 분비되기에 행복해진다. 만약 위 문단이 개소리라는 생각이 든다면 출생의 근거로 들이대는 "일단 태어나면 그 생명은 행복할 것이다" 역시 개소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출생..

반출생주의 2024.04.01

출생 자체가 '사탄'

미신적이고 변태적인 기독교에서는 신과 양립하는 사탄을 상상한다. 그러나 이것은 관념적으로 사탄을 창조신과 동급으로 놓는 것이기에 유일신론과 양립할 수 없다. (정의 상 선하다고 전제되는) 신의 대척점에 사탄이라는 악신을 두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신학 모델에서는 신이 두 분이다. 따라서 표준적인 유일신론에서는 대략 신의 선하심과 신의 의지(Deus vult)를 가로막는 것을 악으로 본다. 이는 사탄의 어원적 의미가 '넘어지게 하는 자'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자연재해나 생로병사 등 '응당 그래야 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흔히 악의 행사라고 보지 않는다. 귀신이 재해를 일으켰다 등등의 미신은 기독교에서 흔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탄의 권능'이라든가 '악한 일'들은 대체로 인재(人災)다. 혹은, 신의 의..

소위 신의 축복을 받은 출생에 관하여

기독교가 출생주의적 성격을 가지게 된 까닭 가운데 하나에는 소위 '신의 축복을 받은 출생' 관념이 있다. 기독교에서 모든 출생은 신의 축복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성경적 근거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 (창세기 1장 28절) 를 든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창세기 1장 28절, 공동번역 그러나 모든 성경적 근거가 그러하듯, 정말 신의 복음을 담고있는 부분과 사회적 부분, 그리고 저자의 편향 부분을 구별하여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창세기의 구절이 정말 복음인지, 창세기의 저작 시점의 사회상을 담고있는 것에 불과한지, 혹은 복음과 무관하게 저자의 편향을 드러내는 부분인지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일단 이 구절이'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넘어가겠다. 그런데 새로 태어나는 존재..

반출생주의 핸드북

내가 번역에 참여한 반출생주의 핸드북이 인터넷에 공개되었다. https://antinatalisthandbook.org/languages/korean Korean — An Antinatalist Handbook 대체로 이 변명은 출생 당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제시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이러한 변명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출산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중 어떤 것이 더 큰지 확실히 알지 못합니 antinatalisthandbook.org Lawrence Anton 이 쓴 영어 원본을 내가 번역하고 디씨인사이드 반출생주의 갤러리 유저가 proof-reading했다. 모두 자원봉사로 참여하였다. 내가 참여한 번역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것이다. 무척 뿌듯하다.

반출생주의 2024.01.26

de Giraud - The Childfree Christ (서두)

기준판본: 2021년판 Theophile de Giraud - The Childfree Christ: Antinatalism in early Christianity ISBN: 978-2-9602737-0-0 (paperback) [시작] 커버 일러스트레이션: The Fall of the Rebel Angels, Pieter Bruegel the Elder 作. 이 작품에서 추락하는 천사들은 생식 상징주의와 긴밀이 연관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 이 텍스트의 첫 판본은 Antinatalism in Early Christianity라는 제목 하에 2020년 두 곳에 발표되었다. 첫째는 Andreas Moss의 감독하의 The Antinatalism Magazine (#3)이고 두번째는 Katerina ..

비존재에게도 신은 존재하는가?

비존재의 세계에는 신이 있는가? 인간은 관념적으로 비존재를 상정할 수 있고 심지어 언어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한국어로는 비존재를 체언화하는 것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지만 "Nobody" is in the room. 같은 표현의 nobody는 물론 그리스신화의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무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표현인 "Οὖτις" (우티스)도 "negative entity"자체를 지시하는 명사표현이다. 베너타의 논증에 보면, 비존재의 유익은 없는 것이 나쁘지 않고, 존재의 해악은 없는 것이 좋다. 이 비대칭성. 그것이 베너타의 반출생주의의 핵심 근거이다. 물론 영어의 no-N, 헬라어의 Οὖ-N 의 형태로 표출되는 비존재와 베너타의 비존재는 다르다. 언어적 비존재는 논리적으로 정의되는 반면 베너타의 '출생의 ..

윤리의 근원으로서 (여전히) 신을 상정하기

Jeffrey Kaplan 에우튀프론(Ευθύφρων) 강독을 들었다. 강독을 듣는데, 무엇이 도덕적이고(의롭고) 무엇이 아니냐에 대한 논쟁 부분에서 libertas dei 즉 신의자유 개념이 생각났다. 두 가지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있을지 모르겠다. 에우튀프론은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 중 하나로 'ὅσιος'가 무엇이냐에 대한 책이다. ὅσιος는 흔히 경건함으로 해석되고 성경에서는 성인(聖人)을 이 단어의 복수형인 οἱ ὅσιοι로 표현하는 등 '종교적으로 올바른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일차적이다. 그러나 에우튀프론에서 이 단어는 단순히 종교적 경건함에 한정되지 않는다. 에우튀프론은 나쁜짓을 한 부모를 고발하는 것이 'ὅσιος'한 행동이라고 주장하고 (플라톤이 인용한) 소크라테스는 그럼 그 ὅσι..

기독교곱씹기 2023.07.14